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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월호 | 해외 ]

기器로 쌓는 풍경_ 안나 실버톤
  • 이수빈 영국 통신원
  • 등록 2025-01-03 13:16:32
  • 수정 2025-01-03 13: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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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실버톤Anna Silverton은 캠버웰camberwell대학에서 도예 학사를, 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 RCA에서 도예유리 석사를 취득하고, 미국 시러큐스대학,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컬리지, 몰리 컬리지 등에서 도예를 가르쳤다. 1993년에 영국으로 돌아온 후 백자(포슬린) 작업에 집중했으며, 현재는 영국 남쪽 해안도시인 켄트에 머물며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살랑이는 바람에 날리는 얇은 커튼 자락처럼 여리면서도, 산비탈에 우뚝 선 오래된 나무 같은 안정적인 존재감을 가진 기器. 영국의 도예가 안나 실버톤의 작품이다. 그는 꾸준한 활동을 통해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한 영국의 도예가로, 미니멀한 형태와 정교한 마감으로 독자적인 표현의 기를 선보인다.


물레를 통한 자기성찰, 이로써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실버톤은 자신을 도자 예술가Ceramic Artist로 소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기’의 개념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만큼 도공Potter으로 불 리는 것 또한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다만 기능적 요소가 작업의 중심에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물레로 원기둥 형태에 기초한 작업을 만들어 내는 것 자체는 반복되지만, 형태는 점진적으로 변화한다.


“물레에 앉아 작업하는 과정은 저에게 명상과도 같습니다. 물레의 움직임과 형태에 집중하다 보면 주변의 소리가 모두 사라지고, 마치 다른 공간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죠. 남편은 제가 작업할 때 아무리 불러도 듣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곤 하지만, 저에게는 이 순간이 정말 소중합니다.”


실버톤은 자신의 작품들이 개별적으로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면서도, 작품이 함께 모였을 때 서로 어우러져 리듬과 조화를 이루기를 바란다. 자신의 작품을 여럿 소장 한 콜렉터의 공간을 방문할 때, 각기 다른 형태와 색감의 기물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장면을 창조해냄에 놀라기도 한다. 이렇듯 실버톤은 그의 손에서 태어난 작품들이 다양한 장소와 구성 안에서 오롯한 아름다움을 전달하기를 바라며, 일상 속에서 매번 새로운 감정을 선사하기를 소망한다.


형태를 찾아가는 치밀하고도 정교한 고민

런던에서 동남쪽으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해안도시, 켄트에 거주하는 실버톤은 해안가 마을 특유의 여유와 평화 속에서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바닷바람과 새소리가 함께하는 아침 산책을 즐기며 작업실에 도착하면, 차를 한 잔 우려 마시며 작업을 구상한 후 물레 앞에 앉는다.

낮고 넓은 발, 어깨가 둥글고 넓은 항아리 등 물레질을 통해 제작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를 선보이지만, 안나 실버톤의 작품 중 단연 인상적인 형태는 넓은 입구와 부러질 듯 가느다란 목, 그리고 다시 넉넉한 몸체로 이어지는 곡선미가 돋보이는 병 이다. 한국인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는 매병의 변형처럼 보이기도 하며, 제작 방식에 있어서는 달항아리의 고유한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극적인 형태는 두 부분을 따로 물레 성형한 후 붙이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우선 밑 부분의 몸체를 만들고, 목의 시작점이 될 입구를 좁게 만든다. 이때 입구 부분은 두 번째 몸체와의 접합부가 될 것이기 때문에, 두께를 납작하고 넓게 유지하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 그 후 사발 모양의 입구 부분을 따로 만드는데, 이때 접합부가 될 부분이 위로 올라가게 뒤집은 형태로 물레 성형한다. 적당한 정도로 건조되었을 때 두 부분을 이어 붙인 후, 넓은 입구에 다시 일정량의 수분을 공급해 물레질로 너비와 각도를 조정하고, 일정 시간 건조 한 후 깎아내는 방식으로 성형을 마친다.


「Porcelain vases shades of green and yellow」


“다른 수많은 유럽인들과 같이, 달항아리의 넉넉한 형태와 그 신비로움에 아름다움과 존경심을 느낍니다. 고유의 제작 과정이나 형태를 재현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잠재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요. 한국의 도예문화는 전통에서 벗어난 아이디어일지라도 여전히 기술에 대한 존중이 함께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완성도를 중시하는 것 또한 공감되는 부분입니다.”


예민한 백자(포슬린) 흙을 사용하는 만큼, 모든 과정 사이 사이에는 세심한 건조 과정이 수반된다. 작가는 제작 공정을 설명하며 “백자는 기억력이 좋다”고 비유했다. 자칫 사소해 보이는 과정이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치며, 각 부분의 습도가 완벽하게 맞지 않으면 갈라지거나 작업 중 찢어지는 등 위험도가 상당한 작업이다. 모든 제작 과정 하나하나가 도전과 같은 험난한 여정이지만, 실버톤은 이를 즐기려 노력하며 또 꽤나 아끼고 있다.


고유의 선, 일상에서 불러온 빛깔

“형태를 찾아가는 여정은 제 작업의 핵심이며, 제일 사랑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초기에는 옛 아프리카 도자를 참고하기도 했지만, 점차 스스로 만든 형태에서 약간의 변화를 더해 새로운 형태를 탄생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해 왔어요. 오랜 시간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과정을 거쳐 나만의 형태와 비례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Large porcelain jar in vivid yellow」 35×43cm | Bright yellow smooth matt Glaze


작업 과정에서의 최우선은 단연 ‘형태’라 강조했지만, 다양한 유약을 통한 질감과 색감의 변주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특징 중 하나이다. 건조하고 보송한 마감의 백색, 반짝이고 매끈한 유리질의 흑색, 개나리를 연상시키는 맑고 선명한 노란색까지. 넓고 풍부한 팔레트 안에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그가 만들어내는 형태에 어울리는 옷이라는 점이다.

놀랍게도, 다양한 색상을 사용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모든 전시가 멈추고 각자의 공간에 갇혔던 코로나 봉쇄 기간 동안, 작가는 이 지난한 시간을 유약 연구에 집중하며 보냈다. 많은 실험을 통해 얻은 색색의 유약을 입힌 기를 인터넷 전시를 통해 선보였고, 기대 이상의 반응과 주문이 이어졌다. 코로나 블루가 만연했던 시기에 그의 파랑, 노랑, 초록은 새로운 생기를 전했고, 여러 공간에서 각각의 선명한 아름다움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전시 《색의 윤곽선 The Outline of Colour》에서 선보인 신작은 기존의 단색 표현과 달리, 연두색에서 옥빛으로, 옥빛에서 바다색으로 은은하게 변화하는 그라데이션이 눈길을 끌었다. 작가는 이를 ‘해안의 그라데이션Coastal Gradation’이라 표현하며, 해안가 마을에서의 생활에 영향을 받았다고 전한다. 실버톤의 작품이 더 넓고 깊은 바다에서는, 더 높고 푸른 하늘에서는 어떤 변화를 선보일지 궁금증과 기대가 피어오른다.


「Coastal Gradation Group」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4년 12월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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