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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월호 | 나의 작업세계 ]

경계가 열어주는 가능성_최나운
  • 최나운 작가
  • 등록 2025-01-02 11: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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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 _폴 발레리Paul Valéry


우리는 흔히 진리를 찾기 위해 내면을 탐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해답은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시인인 폴 발레리는 표면, 즉 피부에서 그 답을 찾는다. 얼핏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그는 피부야말로 가장 깊은 본질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피부는 단순한 외피가 아니라, 우리와 세상이 처음으로 맞닿는 지점이다. 이 얇은 막을 통해 감각하고 경험하는 모든 순간들이 우리의 자아를 끊임없이 재탄생시킨다. 피부는 세상과 소통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하는 최초의 장이며, 외부와 내부를 가르는 경계인 동시에 그 경계를 넘어서게 해주는 통로인 셈이다. 

이러한 경계는 단순히 물리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가 정해놓은 규범 속에서 살아 가야 한다는 요구를 받는다. 이러한 구속은 외부 세계와 자아의 충돌을 일으키고 균열을 만든다. 이 균열은 부정적인 틈이 아니라, 오히려 자아가 외부 세계와 마주하며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경계 공간이다. 자아는 이 균열 속에서 고정된 틀을 넘어 스스로를 새롭게 정의하고,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탄생한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부응하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타자로서의 자아를 인식하게 되었다. 사회 속에서 나는 때때로 비정상으로 규정되곤 했다. 특히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의 경계를 벗어나려 할 때, 내면과 세계의 충돌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경계’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경계 탐구’가 나의 작업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Bump01」 12×18×17cm | 석기질 점토, 큐빅, 손성형 | 2023


「바디 플랜트 Body Plant」 연작을 구상하게 된 배경에는 꽃과 여성의 연약함을 연결 짓는 사회적 통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의 아름다움은 종종 꽃에 비유되지만, 나는 이 관습이 단순히 꽃의 ‘아름다움’이라는 속성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사물이 무수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꽃과 여성이 연결되는 이유는, 꽃이 가지는 연약함과 수동성이 여성성의 본질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여성 신체와 식물의 결합을 통해, 자유로운 여성 자아와 억압적인 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시각화하려 했다. 인간도 식물도 아닌 낯선 생명체를 창조한 것은 외부세계에 대한 나름의 도전이자 반발 이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을 충족시켰을 때, 만들어진 그 모습이 진정 우리가 원하던 결과인지 의문을 던지고자 했다. 내면과 세계의 충돌 지점에서 자아는 파편화되고 해체되지만, 혼란과 불안정 속에서도 온전한 존재로 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통합을 시도한다. 내가 선택한 생존 방식은 ‘완전한 결합’이었다. 이 결합은 단순히 분열된 자아를 복원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 변신이자 진화의 과정이며, 헤르마 프로디토스Hermaphroditus1)처럼 경계를 뒤섞는 결합이다. 


Bump Series, 202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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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동시에 지닌 신이다. 아프로디테와 헤르메스의 아들로, 물의 님프와 결합해 자웅동체가 되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4년 12월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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